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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주해야 할..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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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고 2018년 『흰』으로 같은 상 최종 후보에 오른 한강 작가의 5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출간되었다. 2019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전반부를 연재하면서부터 큰 관심을 모았고, 그뒤 일 년여에 걸쳐 후반부를 집필하고 또 전체를 공들여 다듬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본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2015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작별」(2018년
저자
한강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1.09.09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인간의 상처와 기억, 그리고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은 제주 4·3 사건을 중심으로 역사적 비극과 개인의 상처를 교차하며, 한강 특유의 서정적이고 밀도 높은 문체로 깊은 울림을 준다.

1. 기억과 망각, 그리고 증언의 의미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 개인의 상처가 집단적인 역사적 기억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경하는 제주 4·3 사건의 생존자인 인선과 그의 어머니를 만나면서, 과거의 아픔을 직접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소설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생존 방식이자 저항임을 강조한다. 인선의 어머니는 학살의 참상을 직접 겪었지만, 오랜 세월을 침묵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 침묵이 망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살아남아 존재하는 것 자체가 역사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한강은 소설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단순히 고통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행위임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제주 4·3 사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기억해야 할 수많은 비극과 맞닿아 있다. 기억이야말로 상처받은 자들의 마지막 권리이자,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할 의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2. 서정적이면서도 절제된 문체

한강의 문장은 아름답고도 고요한 슬픔을 머금고 있다. 그녀의 문장은 과장되지 않지만, 한 줄 한 줄이 가슴 깊숙이 스며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인선이 자신의 기억을 되짚으며 내면의 고통을 드러내는 장면들은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함축적인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전달된다. 이런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단순한 연민을 넘어, 그들이 겪었을 공포와 상실감을 깊이 체감하게 만든다.

특히, 작품 속에서 자연의 이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강은 바다, 나무, 바람 등의 자연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인선이 기억을 떠올릴 때 등장하는 바다의 묘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이러한 문체적 특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닌, 문학적으로도 깊이 있는 작품으로 만든다.

3.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와 고통

한강의 소설이 지닌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여성의 관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이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여성 인물들이 역사의 폭력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어떤 방식으로 기억을 간직하는지가 중요한 서사로 자리한다.

인선의 어머니는 제주 4·3 사건에서 가족을 잃고도 살아남았지만, 그녀의 삶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끝없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녀가 겪은 폭력과 상실은 단순히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어떻게 여성들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를 보여준다. 한강은 이러한 여성들의 고통을 단순한 피해자로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는지를 조명한다.

이는 한강이 이전 작품들에서도 꾸준히 탐구해 온 주제이기도 하다. 『소년이 온다』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여성과 아이의 시선에서 조명했던 것처럼,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한강은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역사의 아픔을 증언하게 한다.

4. 죽음을 넘어선 연대와 위로

이 소설의 제목인 『작별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별의 부정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선 연대와 기억의 지속성을 의미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비극적인 과거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상처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하지만 한강은 그 상처를 간직한 채로도 서로를 위로하고, 다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하가 인선과 그의 어머니를 만나며 과거의 기억을 함께 나누는 것은 단순한 취재가 아니라, 하나의 연대 행위다. 그는 타인의 아픔을 듣고, 그것을 기억하는 일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비극적인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우리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자세로,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고 이어가야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다. 이는 과거와 현재, 개인과 집단, 죽음과 삶이 맞닿아 있는 복합적인 이야기이며, 기억과 망각, 연대와 치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다.

한강의 문장은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그녀가 포착한 인간의 아픔과 생존의 방식은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제주 4·3 사건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소재로 했지만, 이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특정 시대나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과거의 상처를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어가야 하는지를 묻는 이 소설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질문이자 책임이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한 저항이며, 동시에 살아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애도임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을 읽은 후, 우리는 단순한 독자로서가 아니라, 그 기억을 함께 짊어진 존재로서, 다시금 역사와 마주해야 할 것이다.